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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포항 석유 가스와 임진왜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1%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그의 "포항 영일만 앞바다, 140억 배럴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발표는 단순한 브리핑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한 맥락이 오버랩 된다는 것. 과거 400여년 전 일본은 통일 직후 정치적 불안정과 권력 투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2년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하고 천하통일을 이루었지만, 그의 죽음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가문 간의 권력 다툼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지도자들은 조선 침략을 통해 국내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 간의 권력 투쟁이 치열했고, 이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조선 침략이라는 외부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국내 문제를 회피하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과 유사한 면모로 볼 수 있다. 그의 국정 지지율이 저조한 가운데, 포항 앞바다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부각시킨 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경제 성장과 에너지 자립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전환하고자 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의 경우,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조선 침략을 감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는 국내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자 했던 지도자들의 실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이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듯이, 윤 대통령의 이번 발표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투명하고 정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진정한 대통령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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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입틀막" 언론자유지수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보다 15단계 하락한 62위를 기록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가 공격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분류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검열이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우리 학교 도서관 벽에는 한 학생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한 손에는 파리모기를 잡는 스프레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라이터를 쥐고, 그 학생은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또 외쳤다. 그때마다 도서관 옥상에서는 그 학생이 매달려 있는 밧줄을 끌어올렸다. 도서관 옥상까지 끌어올려질 때 쯤, 그 학생은 손에 든 스프레이를 발사하고 동시에 라이터를 켰다.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불꽃이 튀어나오며 끌어올려진 학생은 다시 도서관 벽에 밧줄로 매달려 내려갔다. 그 학생이 외친 구호는 "독재 타도"였다. 우리 세대는 대학 캠퍼스에서 조차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신성한 대학 캠퍼스에는 사복경찰이 우리를 항시 감시하고 있었고, 시위 관련 당국에 잡혀간 한 대학생은 물고문으로 죽었으며, 시위하던 어느 대학생은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막 10대를 벗어난 우리 세대가 직면한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날의 수많은 이름 없는 주검들이 오늘의 민주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윤정권이 들어서 대통령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국회의원이 경호원들에게 입이 막혀 끌려 나갔고, 카이스트 졸업식에서도 한 석사가 윤대통령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입이 틀어 막혀 끌려 나갔다. 그리고 몇몇 언론사는 정부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았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윤 대통령과 정부 인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와 기자들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받았다. 미국의 세 번째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에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문장이 만들어졌다. 이 문장은 당시 우리 세대를 대변한다. 80년대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이름 없는 주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입틀막” 언론자유지수 하락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정말 우려스럽고 가슴이 먹먹하다. 얼마만큼 우리의 피를 먹어야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인지...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은 희생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불의와 싸워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민주사회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자유지수 하락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민주주의의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의 어두운 시기로 돌아갈 위험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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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대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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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새로운 계급 투쟁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우리 사회는 신분제를 벗어나려 노력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신분제의 틀이 다른 형태로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6.25 한국전쟁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도입은 사회 구조 내에서 양반들이 독점했던 권리들, 특히 교육에 대한 접근을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계급을 창출했다. 교육열과 학벌이 바로 그것이다. 의사와 법조인은 각각 이과와 문과 분야에서의 엘리트 계급으로 여겨진다. 이들 직업군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직업 선택을 넘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단순히 의료 인력의 수를 조절하는 정책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계의 엘리트 집단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며, 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어느 의사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발언은 의료계 내부의 일부가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우월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선민의식이나 조선시대의 계급의식과 유사한 현대판 형태이며, 의료계와 정부 간의 충돌은 이러한 계급의식의 현대적 재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며, 모든 직업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의사와 같은 특정 직업군이 사회 내에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로 여겨질 때, 그것은 사회 전체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가 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의료계 내의 엘리트주의를 완화하고 사회적평등을 증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모든 의료 인력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배치되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며,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료계 내부의 문화와 태도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의사 개개인이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 투쟁은 더 이상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직업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계급 간의 갈등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쟁은 이러한 갈등의 현대적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계급의식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 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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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해 명검(名劍)으로 빛나야
(좌) 오창호 성악가 (우)탁계석 예술비펑가회장(사진제공:뉴 도덕, 종교, 정치에 기대하지 말고 예술이 구원해야옛 사람들은 인연을 중시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때를 만나고, 좋은 곳에 있는 것을 멋진 인연이라 했다. 인연인가? 필연인가? 필연을 넘어서 만나는 운명적인 만남은 또 무엇이라 해야 하나? 악연도 있지만 천생연분도 있고 형제의 인연도 있으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냐랴?이날 오창호 테너를 만난 것은 마치 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遭遇)해 명검(名劍)으로 빛나는 순간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명검이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 타락한 것의 뿌리를 도려내고, 맑은 정신이 시냇물처럼 흘러서 건강한 세상과 터전을 가꾸는데 뭔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도덕과 종교, 정치가 제 몸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때라며, 기대하지 말고, 음악의 원형적 본질에 충실하여 건강성을 회복하자고 몇 번이고 강조 했다.혼탁한 상업주의, 무한경쟁, 반목과 질시, 세계는 전투 중이다 클래식(Classic)은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나왔다. 최상의 안정된 계층의 계급을 뜻한다. 클래식이 계급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이상 클래식의 대중화를 향해 외쳤지만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다. 대중의 클래식화다. 아니 사회 지도층, 오피니언, 러더층을 클래식에 최적화해야 한다. 그런데 만나지도 못하고 빨리 빨리만 외치며 달려 왔다. 그럴 여유도, 환경도, 상황도 못됐다. 숨가쁜 근대화, 현대화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산업 역군, 목숨을 바쳐 조국을 구한 용사들로 위대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문화는 동경심의 발로다. 클래식이 바탕 화면이 되어야 강한 힘이 솟고, 치유와 자유를 즐기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오창호 성악가의 열정이자 도전 목표이다. 장르 예술 가운데서도 특히 성악은 영적 에너지가 있어 호소력이 강하다. 가슴과 심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성악 강국이다. 전 세계의 콩쿠르를 너무 많이 획득했다. 그러나 이들 금메달리스트 성악가들이 전 세대와는 달리 매우 곤경한 삶을 살아 내고 있다. 스포츠와 같은 연금은커녕 험한 일의 투잡 ,쓰리잡을 뛰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서있다. 훌륭한 성악 선배 세대의 전통을 뿌리로 이어가야성악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유학 떠나기 전날 밤의 설레임으로 돌아가야 한다.이탈리아에서 가이드하며 꼬르륵 배를 움켜지고 하이 C를 냈던 선배들의 그 위대한 성악 정신과 기술적 유산, 전통을 다시 꽃피워 내야 한다. 불평등하게 심하게 기운 운동장을 탓하지 말고, 마이크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래 전에 파바로티의 선생 깜뽀갈리아니가 말했듯이, 대한민국이 세계 성악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힘을 뭉쳐야 한다. 깐딴떼들이 때창을 해서라도 꽉 막힌 성문(城門)을 열어야 한다. 오 성악가가 100회 살롱 음악회를 향해 뛰던 중에 평론가인 필자를 만났다. 장소와 때를, 개런티를 내세우지 않고, 뜻있는 후배들을 규합해 맨 몸으로 뛰고 있었다. 거리에 좌판을 펼치는 심정으로, 아니 독립투사가 어두운 새벽길에 나서는 비장한 각오였다. 정부의 기금지원이 아니라 노래에 감동하여 노래 값을 내는 일종의 후불제 콘서트다.K콘텐츠 수출길이 열리고 있다성악가들은 현장 프로가 되어 객석을 휘어잡고 있었다. 무명(無名)이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코스가 실제 실존으로 가는 성장 계단이자 뜀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기부문화가 전혀 없는 풍토에서 매우 중요한 훈련이자 메세나로 가는 초입이 아니겠는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호주머니를 털고, 구원 투수의 후원자들이 용기를 복돋어 주어 지금 여기까지 왔다며, 후원자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했다. 밥을 사고, 봉투를 건네는 따뜻한 후원자, 특별히 이중에서도 그의 스승이자 98세 원로 성악가 이신 흥은표 옹은 매번 콘서트에 참석해 격려를 해주었다.12월 3일 필자는 음악회에서 이들을 만났다. 내용 구성과 진행이 좋고, 가창에서 진한 감동이 묻어났다. 이들에게 응원의 북이 되어 주고 싶다. 변방의 북소리에 놀라 성안의 사람들이 뛰쳐나올 것을 기대한다. 새로운 출발로 더 실기(失機)하기 전에 대한민국에 성악의 르네상스가 기필코 와야겠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지구촌에 평화도 오고, 우리가 산다. 바야흐로 K클래식 수줄에 깃발을 힘차게 펄럭여야 할 때다. 남승모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newsy & newsy.netfuhosting.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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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포항 석유 가스와 임진왜란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1%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그의 "포항 영일만 앞바다, 140억 배럴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발표는 단순한 브리핑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한 맥락이 오버랩 된다는 것. 과거 400여년 전 일본은 통일 직후 정치적 불안정과 권력 투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2년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하고 천하통일을 이루었지만, 그의 죽음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가문 간의 권력 다툼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지도자들은 조선 침략을 통해 국내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 간의 권력 투쟁이 치열했고, 이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조선 침략이라는 외부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국내 문제를 회피하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과 유사한 면모로 볼 수 있다. 그의 국정 지지율이 저조한 가운데, 포항 앞바다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부각시킨 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경제 성장과 에너지 자립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전환하고자 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의 경우,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조선 침략을 감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는 국내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자 했던 지도자들의 실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이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듯이, 윤 대통령의 이번 발표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투명하고 정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진정한 대통령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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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포항 석유 가스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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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입틀막" 언론자유지수
-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보다 15단계 하락한 62위를 기록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가 공격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분류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검열이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우리 학교 도서관 벽에는 한 학생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한 손에는 파리모기를 잡는 스프레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라이터를 쥐고, 그 학생은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또 외쳤다. 그때마다 도서관 옥상에서는 그 학생이 매달려 있는 밧줄을 끌어올렸다. 도서관 옥상까지 끌어올려질 때 쯤, 그 학생은 손에 든 스프레이를 발사하고 동시에 라이터를 켰다.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불꽃이 튀어나오며 끌어올려진 학생은 다시 도서관 벽에 밧줄로 매달려 내려갔다. 그 학생이 외친 구호는 "독재 타도"였다. 우리 세대는 대학 캠퍼스에서 조차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신성한 대학 캠퍼스에는 사복경찰이 우리를 항시 감시하고 있었고, 시위 관련 당국에 잡혀간 한 대학생은 물고문으로 죽었으며, 시위하던 어느 대학생은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막 10대를 벗어난 우리 세대가 직면한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날의 수많은 이름 없는 주검들이 오늘의 민주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윤정권이 들어서 대통령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국회의원이 경호원들에게 입이 막혀 끌려 나갔고, 카이스트 졸업식에서도 한 석사가 윤대통령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입이 틀어 막혀 끌려 나갔다. 그리고 몇몇 언론사는 정부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았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윤 대통령과 정부 인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와 기자들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받았다. 미국의 세 번째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에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문장이 만들어졌다. 이 문장은 당시 우리 세대를 대변한다. 80년대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이름 없는 주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입틀막” 언론자유지수 하락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정말 우려스럽고 가슴이 먹먹하다. 얼마만큼 우리의 피를 먹어야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인지...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은 희생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불의와 싸워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민주사회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자유지수 하락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민주주의의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의 어두운 시기로 돌아갈 위험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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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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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입틀막" 언론자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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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새로운 계급 투쟁
-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우리 사회는 신분제를 벗어나려 노력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신분제의 틀이 다른 형태로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6.25 한국전쟁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도입은 사회 구조 내에서 양반들이 독점했던 권리들, 특히 교육에 대한 접근을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계급을 창출했다. 교육열과 학벌이 바로 그것이다. 의사와 법조인은 각각 이과와 문과 분야에서의 엘리트 계급으로 여겨진다. 이들 직업군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직업 선택을 넘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단순히 의료 인력의 수를 조절하는 정책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계의 엘리트 집단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며, 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어느 의사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발언은 의료계 내부의 일부가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우월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선민의식이나 조선시대의 계급의식과 유사한 현대판 형태이며, 의료계와 정부 간의 충돌은 이러한 계급의식의 현대적 재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며, 모든 직업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의사와 같은 특정 직업군이 사회 내에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로 여겨질 때, 그것은 사회 전체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가 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의료계 내의 엘리트주의를 완화하고 사회적평등을 증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모든 의료 인력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배치되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며,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료계 내부의 문화와 태도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의사 개개인이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 투쟁은 더 이상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직업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계급 간의 갈등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쟁은 이러한 갈등의 현대적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계급의식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 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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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새로운 계급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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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해 명검(名劍)으로 빛나야
- (좌) 오창호 성악가 (우)탁계석 예술비펑가회장(사진제공:뉴 도덕, 종교, 정치에 기대하지 말고 예술이 구원해야옛 사람들은 인연을 중시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때를 만나고, 좋은 곳에 있는 것을 멋진 인연이라 했다. 인연인가? 필연인가? 필연을 넘어서 만나는 운명적인 만남은 또 무엇이라 해야 하나? 악연도 있지만 천생연분도 있고 형제의 인연도 있으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냐랴?이날 오창호 테너를 만난 것은 마치 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遭遇)해 명검(名劍)으로 빛나는 순간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명검이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 타락한 것의 뿌리를 도려내고, 맑은 정신이 시냇물처럼 흘러서 건강한 세상과 터전을 가꾸는데 뭔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도덕과 종교, 정치가 제 몸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때라며, 기대하지 말고, 음악의 원형적 본질에 충실하여 건강성을 회복하자고 몇 번이고 강조 했다.혼탁한 상업주의, 무한경쟁, 반목과 질시, 세계는 전투 중이다 클래식(Classic)은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나왔다. 최상의 안정된 계층의 계급을 뜻한다. 클래식이 계급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이상 클래식의 대중화를 향해 외쳤지만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다. 대중의 클래식화다. 아니 사회 지도층, 오피니언, 러더층을 클래식에 최적화해야 한다. 그런데 만나지도 못하고 빨리 빨리만 외치며 달려 왔다. 그럴 여유도, 환경도, 상황도 못됐다. 숨가쁜 근대화, 현대화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산업 역군, 목숨을 바쳐 조국을 구한 용사들로 위대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문화는 동경심의 발로다. 클래식이 바탕 화면이 되어야 강한 힘이 솟고, 치유와 자유를 즐기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오창호 성악가의 열정이자 도전 목표이다. 장르 예술 가운데서도 특히 성악은 영적 에너지가 있어 호소력이 강하다. 가슴과 심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성악 강국이다. 전 세계의 콩쿠르를 너무 많이 획득했다. 그러나 이들 금메달리스트 성악가들이 전 세대와는 달리 매우 곤경한 삶을 살아 내고 있다. 스포츠와 같은 연금은커녕 험한 일의 투잡 ,쓰리잡을 뛰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서있다. 훌륭한 성악 선배 세대의 전통을 뿌리로 이어가야성악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유학 떠나기 전날 밤의 설레임으로 돌아가야 한다.이탈리아에서 가이드하며 꼬르륵 배를 움켜지고 하이 C를 냈던 선배들의 그 위대한 성악 정신과 기술적 유산, 전통을 다시 꽃피워 내야 한다. 불평등하게 심하게 기운 운동장을 탓하지 말고, 마이크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래 전에 파바로티의 선생 깜뽀갈리아니가 말했듯이, 대한민국이 세계 성악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힘을 뭉쳐야 한다. 깐딴떼들이 때창을 해서라도 꽉 막힌 성문(城門)을 열어야 한다. 오 성악가가 100회 살롱 음악회를 향해 뛰던 중에 평론가인 필자를 만났다. 장소와 때를, 개런티를 내세우지 않고, 뜻있는 후배들을 규합해 맨 몸으로 뛰고 있었다. 거리에 좌판을 펼치는 심정으로, 아니 독립투사가 어두운 새벽길에 나서는 비장한 각오였다. 정부의 기금지원이 아니라 노래에 감동하여 노래 값을 내는 일종의 후불제 콘서트다.K콘텐츠 수출길이 열리고 있다성악가들은 현장 프로가 되어 객석을 휘어잡고 있었다. 무명(無名)이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코스가 실제 실존으로 가는 성장 계단이자 뜀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기부문화가 전혀 없는 풍토에서 매우 중요한 훈련이자 메세나로 가는 초입이 아니겠는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호주머니를 털고, 구원 투수의 후원자들이 용기를 복돋어 주어 지금 여기까지 왔다며, 후원자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했다. 밥을 사고, 봉투를 건네는 따뜻한 후원자, 특별히 이중에서도 그의 스승이자 98세 원로 성악가 이신 흥은표 옹은 매번 콘서트에 참석해 격려를 해주었다.12월 3일 필자는 음악회에서 이들을 만났다. 내용 구성과 진행이 좋고, 가창에서 진한 감동이 묻어났다. 이들에게 응원의 북이 되어 주고 싶다. 변방의 북소리에 놀라 성안의 사람들이 뛰쳐나올 것을 기대한다. 새로운 출발로 더 실기(失機)하기 전에 대한민국에 성악의 르네상스가 기필코 와야겠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지구촌에 평화도 오고, 우리가 산다. 바야흐로 K클래식 수줄에 깃발을 힘차게 펄럭여야 할 때다. 남승모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newsy & newsy.netfuhosting.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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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해 명검(名劍)으로 빛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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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포항 석유 가스와 임진왜란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21%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그의 "포항 영일만 앞바다, 140억 배럴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 발표는 단순한 브리핑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한 맥락이 오버랩 된다는 것. 과거 400여년 전 일본은 통일 직후 정치적 불안정과 권력 투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2년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하고 천하통일을 이루었지만, 그의 죽음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도요토미 가문 간의 권력 다툼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지도자들은 조선 침략을 통해 국내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 간의 권력 투쟁이 치열했고, 이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자들은 조선 침략이라는 외부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국내 문제를 회피하고자 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과 유사한 면모로 볼 수 있다. 그의 국정 지지율이 저조한 가운데, 포항 앞바다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부각시킨 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경제 성장과 에너지 자립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전환하고자 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의 경우,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조선 침략을 감행했지만 결과적으로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했다. 이는 국내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자 했던 지도자들의 실패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이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듯이, 윤 대통령의 이번 발표 역시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투명하고 정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진정한 대통령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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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포항 석유 가스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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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입틀막" 언론자유지수
- 최근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보다 15단계 하락한 62위를 기록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우리나라를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가 공격받는 대표적인 사례"로 분류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에 대한 정치적 압력과 검열이 심각해졌음을 보여준다. 1980년대, 우리 학교 도서관 벽에는 한 학생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한 손에는 파리모기를 잡는 스프레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라이터를 쥐고, 그 학생은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또 외쳤다. 그때마다 도서관 옥상에서는 그 학생이 매달려 있는 밧줄을 끌어올렸다. 도서관 옥상까지 끌어올려질 때 쯤, 그 학생은 손에 든 스프레이를 발사하고 동시에 라이터를 켰다. 마치 화염방사기처럼 불꽃이 튀어나오며 끌어올려진 학생은 다시 도서관 벽에 밧줄로 매달려 내려갔다. 그 학생이 외친 구호는 "독재 타도"였다. 우리 세대는 대학 캠퍼스에서 조차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신성한 대학 캠퍼스에는 사복경찰이 우리를 항시 감시하고 있었고, 시위 관련 당국에 잡혀간 한 대학생은 물고문으로 죽었으며, 시위하던 어느 대학생은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막 10대를 벗어난 우리 세대가 직면한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날의 수많은 이름 없는 주검들이 오늘의 민주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윤정권이 들어서 대통령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국회의원이 경호원들에게 입이 막혀 끌려 나갔고, 카이스트 졸업식에서도 한 석사가 윤대통령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입이 틀어 막혀 끌려 나갔다. 그리고 몇몇 언론사는 정부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았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윤 대통령과 정부 인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와 기자들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받았다. 미국의 세 번째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에서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문장이 만들어졌다. 이 문장은 당시 우리 세대를 대변한다. 80년대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이름 없는 주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작금의 “입틀막” 언론자유지수 하락 문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노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정말 우려스럽고 가슴이 먹먹하다. 얼마만큼 우리의 피를 먹어야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인지...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은 희생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불의와 싸워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의 민주사회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자유지수 하락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고, 민주주의의 나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역사의 어두운 시기로 돌아갈 위험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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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사설]"입틀막" 언론자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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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새로운 계급 투쟁
-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우리 사회는 신분제를 벗어나려 노력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신분제의 틀이 다른 형태로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6.25 한국전쟁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도입은 사회 구조 내에서 양반들이 독점했던 권리들, 특히 교육에 대한 접근을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계급을 창출했다. 교육열과 학벌이 바로 그것이다. 의사와 법조인은 각각 이과와 문과 분야에서의 엘리트 계급으로 여겨진다. 이들 직업군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직업 선택을 넘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단순히 의료 인력의 수를 조절하는 정책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도전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계의 엘리트 집단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며, 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어느 의사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발언은 의료계 내부의 일부가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우월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선민의식이나 조선시대의 계급의식과 유사한 현대판 형태이며, 의료계와 정부 간의 충돌은 이러한 계급의식의 현대적 재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며, 모든 직업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의사와 같은 특정 직업군이 사회 내에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로 여겨질 때, 그것은 사회 전체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가 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의료계 내의 엘리트주의를 완화하고 사회적평등을 증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모든 의료 인력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배치되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며,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의료계 내부의 문화와 태도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의사 개개인이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적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 투쟁은 더 이상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육과 직업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계급 간의 갈등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논쟁은 이러한 갈등의 현대적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계급의식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 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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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새로운 계급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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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해 명검(名劍)으로 빛나야
- (좌) 오창호 성악가 (우)탁계석 예술비펑가회장(사진제공:뉴 도덕, 종교, 정치에 기대하지 말고 예술이 구원해야옛 사람들은 인연을 중시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때를 만나고, 좋은 곳에 있는 것을 멋진 인연이라 했다. 인연인가? 필연인가? 필연을 넘어서 만나는 운명적인 만남은 또 무엇이라 해야 하나? 악연도 있지만 천생연분도 있고 형제의 인연도 있으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냐랴?이날 오창호 테너를 만난 것은 마치 부러진 양날의 칼이 조우(遭遇)해 명검(名劍)으로 빛나는 순간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명검이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 타락한 것의 뿌리를 도려내고, 맑은 정신이 시냇물처럼 흘러서 건강한 세상과 터전을 가꾸는데 뭔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도덕과 종교, 정치가 제 몸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때라며, 기대하지 말고, 음악의 원형적 본질에 충실하여 건강성을 회복하자고 몇 번이고 강조 했다.혼탁한 상업주의, 무한경쟁, 반목과 질시, 세계는 전투 중이다 클래식(Classic)은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나왔다. 최상의 안정된 계층의 계급을 뜻한다. 클래식이 계급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이상 클래식의 대중화를 향해 외쳤지만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다. 대중의 클래식화다. 아니 사회 지도층, 오피니언, 러더층을 클래식에 최적화해야 한다. 그런데 만나지도 못하고 빨리 빨리만 외치며 달려 왔다. 그럴 여유도, 환경도, 상황도 못됐다. 숨가쁜 근대화, 현대화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산업 역군, 목숨을 바쳐 조국을 구한 용사들로 위대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문화는 동경심의 발로다. 클래식이 바탕 화면이 되어야 강한 힘이 솟고, 치유와 자유를 즐기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오창호 성악가의 열정이자 도전 목표이다. 장르 예술 가운데서도 특히 성악은 영적 에너지가 있어 호소력이 강하다. 가슴과 심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성악 강국이다. 전 세계의 콩쿠르를 너무 많이 획득했다. 그러나 이들 금메달리스트 성악가들이 전 세대와는 달리 매우 곤경한 삶을 살아 내고 있다. 스포츠와 같은 연금은커녕 험한 일의 투잡 ,쓰리잡을 뛰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서있다. 훌륭한 성악 선배 세대의 전통을 뿌리로 이어가야성악이 힘을 발휘해야 한다. 유학 떠나기 전날 밤의 설레임으로 돌아가야 한다.이탈리아에서 가이드하며 꼬르륵 배를 움켜지고 하이 C를 냈던 선배들의 그 위대한 성악 정신과 기술적 유산, 전통을 다시 꽃피워 내야 한다. 불평등하게 심하게 기운 운동장을 탓하지 말고, 마이크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오래 전에 파바로티의 선생 깜뽀갈리아니가 말했듯이, 대한민국이 세계 성악의 중심 국가가 되어야 한다. 혼자서는 무엇도 할 수 없다. 힘을 뭉쳐야 한다. 깐딴떼들이 때창을 해서라도 꽉 막힌 성문(城門)을 열어야 한다. 오 성악가가 100회 살롱 음악회를 향해 뛰던 중에 평론가인 필자를 만났다. 장소와 때를, 개런티를 내세우지 않고, 뜻있는 후배들을 규합해 맨 몸으로 뛰고 있었다. 거리에 좌판을 펼치는 심정으로, 아니 독립투사가 어두운 새벽길에 나서는 비장한 각오였다. 정부의 기금지원이 아니라 노래에 감동하여 노래 값을 내는 일종의 후불제 콘서트다.K콘텐츠 수출길이 열리고 있다성악가들은 현장 프로가 되어 객석을 휘어잡고 있었다. 무명(無名)이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코스가 실제 실존으로 가는 성장 계단이자 뜀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기부문화가 전혀 없는 풍토에서 매우 중요한 훈련이자 메세나로 가는 초입이 아니겠는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호주머니를 털고, 구원 투수의 후원자들이 용기를 복돋어 주어 지금 여기까지 왔다며, 후원자들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했다. 밥을 사고, 봉투를 건네는 따뜻한 후원자, 특별히 이중에서도 그의 스승이자 98세 원로 성악가 이신 흥은표 옹은 매번 콘서트에 참석해 격려를 해주었다.12월 3일 필자는 음악회에서 이들을 만났다. 내용 구성과 진행이 좋고, 가창에서 진한 감동이 묻어났다. 이들에게 응원의 북이 되어 주고 싶다. 변방의 북소리에 놀라 성안의 사람들이 뛰쳐나올 것을 기대한다. 새로운 출발로 더 실기(失機)하기 전에 대한민국에 성악의 르네상스가 기필코 와야겠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지구촌에 평화도 오고, 우리가 산다. 바야흐로 K클래식 수줄에 깃발을 힘차게 펄럭여야 할 때다. 남승모 기자@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newsy & newsy.netfuhosting.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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